과천성당

천주교 수원교구

1. 성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하느님의 자비주일 

 2000년 대희년 4월 3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온 교회는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부를 것”을 선포했다. 이날은 ‘자비의 사도’로 널리 알려진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가 시성된 날이었다. 같은 해 5월 5일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2001년부터 부활 제2주일을 자비주일로 지내도록 하는 교령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교회는 부활 제2주일에 하느님의 자비를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하며, 각 기도문도 하느님의 자비를 기리는 고유기도로 바꿔 바치게 되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하느님의 자비’ 신심에 온전히 헌신했던 복녀 파우스티나 수녀를 새 천년기의 첫 성인으로 선포하면서 하느님 자비를 이 시대에 새롭게 일깨우고 실천하도록 한 것이었다. 그리고 5년 후, 2005년 4월 2일 자비주일이 시작되던 저녁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세상을 떠나셨고, 2011년 5월 1일 자비주일에 복자품에 오르셨으며, 2014년 4월 27일 자비주일에 요한 23세 교황님과 함께 성인품에 오르게 되셨다.

2. 하느님의 자비주일(부활 제2주일) 유래와 신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4월 30일 ‘하느님 자비의 사도’인 마리아 파우스티나 수녀(1905~1938)를 시성하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특별히 기념할 것을 당부했고, 이에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2001년부터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주일로 지내도록 했다.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St. Maria Faustina Kowalska) 수녀는 폴란드 출신으로 20살 때 자비의 성모 수녀회에 입회했다. 그 후 33살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하느님 자비를 깊이 묵상하며 이웃에게 실천했다. 특히 수도생활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계시와 환시 같은 특별한 은사를 체험해 ‘하느님 자비의 사도’로 불리웠다. 이 체험이 기록된 파우스티나 성녀 일기 ‘나의 영혼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는 전 세계에 하느님 자비심을 알리는 메시지가 됐다.

   교황은 시성식 강론에서 “자비의 메시지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폭력과 전쟁이 난무하는 이때에 마리아 파우스티나 수녀는 우리 시대를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밝혔다. 한편 교황은 이미 1980년에 「자비로우신 하느님」 회칙을 발표, “교회는 하느님 자비의 진리를 선포하고 고백하며 사람들에게 자비를 실천하고자 노력해야 한다(15항)”고 강조한 바 있다.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가 전하는 하느님의 자비 신심의 핵심은 믿음과 실천이다. 하느님 자비를 얻기 위해선 하느님께서 자신의 죄와 벌을 완전히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을 너희들 믿음에 의존한다. 너희들 믿음이 크다면 그만큼 내 관대함도 한계를 모르게 된다”(일기 중에서)

  또 말과 행동. 기도를 통해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 “나는 나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자비의 행동을 요구한다. 언제 어디서나 이웃에게 자비를 보여야 한다. 자비를 피하거나 변명해서는 안된다. 나는 이웃에게 자비를 실천할 세가지 방법을 주겠다. 첫째는 행동, 둘째는 말, 셋째는 기도로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아무리 돈독한 신앙을 가져도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일기 중에서) 성녀의 일기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자비 상본을 만들고, 자비 축일을 지내며 자비 시간을 가질 것을 말씀했다.

  하느님의 자비 상본은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하나이다’라는 글이 새겨진 부활하신 그리스도 모습이다. 손과 발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흔적과 심장에서는 두 줄기 빛이 발하고 있다. 이는 예수께서 1931년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나타나 당신 모습을 그려 전하라고 하신 데서 유래한다.

  예수께서는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 자비의 축일로 지내도록 요청하면서, 축일을 지내기 위해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하고 하느님 자비를 간청하는 성체조배 시간을 갖도록 당부하셨다. 또 성 금요일부터 9일기도를 바치며 축일을 준비하도록 했다. 특히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오후 3시에는 하느님 자비를 찬미하고 영광드리며 죄인들을 위해 하느님 자비를 청하는 기도를 바치라고 말씀하셨다.

 

3.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자비 체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문장 안에는 ‘Miserando atque Eligendo’라는 라틴어로 된 사목표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뜻은 ‘자비로이 부르시니’입니다. 그런데 교황님은 왜 문장에 사목표어를 넣으셨을까요? 사실 교황님의 이 사목표어의 시작은 긴 세월을 흘러 올라갑니다. 1953년 17살이었던 소년 베르골리오는(교황님 본래 이름)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깊은 자비를 체험했고 부르심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9월 21일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이었습니다. 성 마태오 축일의 성무일도 독서에서 성 베다 사제는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오를 ‘자비로이 부르시니’ (Miserando atque Eligendo) 응답하였다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에노스아이레스 보좌 주교님이 되실 때부터 성구로서 ‘자비로이 부르시니’를 사용하셨고 교황님이 되시는 순간에도 그 첫 마음을 잊지 않고 주님께서 ‘자비로이 부르시니’ 충실히 응답하신 것이라 여겨집니다.

 “지금은 자비의 시대입니다. 평신도들이 자비를 실천하고 다양한 사회 환경에 자비를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나아가십시오.”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황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비를 강조하십니다. 2015년 4월 11일 자비주일 전야 ‘자비의 얼굴’이라는 칙서를 통해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6,36)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갈 것을 당부하시면서 ‘자비의 특별희년’(2015.12.8.~2016.11.20.)을 발표하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5년 12월 8일 ‘자비는 하느님의 심장입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자비의 특별 희년을 시작하셨습니다.

  교황님과 일치하여 서울대교구장님이신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님께서도 2016년도 사목교서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입은 신앙인은 그 자비와 사랑을 잊을 수가 없으며,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시며 자비의 삶을 강조하셨습니다.

 

4. 신약성경 그리스어의 자비

스플랑크논 –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할 때, 히브리어 라하밈의 번역어로 스플랑크논이 쓰였다. 이 말은 본디 ‘내장’, ‘창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고전 그리스어에서 스플랑크논은 격 한 분노와 격한 사랑이 머무는 곳이었다. 그런데 히브리어 라하밈을 이 말로 옮기면서 반전 이 일어났다. 스플랑크논은 칠십인역에서 친절, 호의, 사랑, 자비, 연민 등을 뜻하게 되었고, 신약성경에서도 이렇게 쓰였다.

 스플랑크니조마이 – ‘감동받아 창자 속으로 들어오다’(moved as to one’s bowels)로 옮기는데 ‘내장이 흔들릴 정도로 감동받다’ 또는 ‘공감의 감정으로 감동받다’(moved with compassion)로 새길 수 있다. 곧, 측은지심의 지극한 상태 또는 깊은 자비의 느낌을 표현하는 말이다. 우리말의 ‘애가 끊어질 정도로 격하게 공감하다’로 번역하면 적절하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자주 언급하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937)와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에서 이 동사는 결정적 장면에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강도들을 만나 초주검이 되어 길에 내버려진 사람을 보고 사마리아 사람의 내면을 묘사하는데 바로 이 동사가 쓰였다. 사마리아 사람은 애가 끊어지는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에스플랑크니스테).(루카 10,33)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에스플랑크니스테).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루카 15,20)

 

 <자비를 청하는 기도>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성녀

 

주님, 제 눈이 자비로워지도록 도우소서.

그래서 제가 누구라도 겉모습만 보고 의심하거나 판단할 것이 아니라, 이웃의 영혼 안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알아차리고 그를 도울 수 있게 하소서.

제 귀가 자비로워지도록 도우소서.

그래서 제가 이웃에게 필요한 것들에 마음을 기울이며, 이웃의 고통과 탄식에 귀를 막지 않게 하소서.

주님 제 혀가 자비로워지도록 도우소서.

그래서 제가 이웃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고, 각자에게 위로와 용서의 말을 하게 해주소서.

제 손이 자비로워지고 선행으로 가득 차도록 도우소서.

그래서 제가 이웃에게 좋은 일만 하고, 어렵고 힘든 일은 제가 대신 짊어지게 하소서.

제 발이 자비로워지도록 도우소서.

그래서 제가 늘 이웃을 도우러 급히 달려가며, 저의 무기력과 피로를 잘 다스리게 하소서. 저의 참된 휴식은 이웃에 대한 봉사에 있나이다.

제 마음이 자비로워지도록 도우소서.

그래서 제가 이웃의 모든 고통을 느낄 수 있게 하소서. 제가 누구도 미워하지 않게 하시고, 저의 감정을 악용할 사람들과의 관계도 성실히 돌보게 하소서. 제 자신은 예수님의 자비로운 마음속에 굳게 가두어 두겠나이다. 저의 고통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겠나이다. 오, 저의 주님, 제 안에 당신의 자비가 머물게 하소서.

당신께서는 저에게 세 가지 자비를 익히라고 명하셨나이다. 한 가지는 온갖 형태를 지닌 ‘자비로운 행위’이고, 다른 한 가지는 ‘자비로운 말’입니다. 행동으로 베풀 수 없는 자비는 말로 실행해야 합니다. 나머지 한 가지는 ‘기도’입니다. 행동이나 말을 통해 자비를 베풀 수 없을 때에는 늘 기도로 실행할 수 있습니다. 저의 기도는 제 몸이 도달할 수 없는 곳까지 이릅니다.

저의 예수님, 당신 안에서 저를 변화시켜 주소서. 당신께는 모든 일이 가능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