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 세우셨습니다. 유다인의 전통에 따르면 매년 그들의 조상들이 이집트 땅을 탈출한 것을 기념하여 파스카의 제사, 곧 해방의 제사를 야훼 하느님께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이때에 만찬을 함께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마지막으로 맞이하는 세상에서의 파스카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하시며 파스카의 제물인 어린양 대신 당신의 몸과 피를 제물로 바치는 감사의 제사를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이 제사는 오늘날까지 미사라는 이름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사는 그 시작에서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기 위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말씀과 선포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시어 사람이 되게 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 인류를 위해 바치는 사랑의 제사인 성찬례는 그 목적과 방법이 모두 하느님의 사랑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지내는 사람들에게 그 사랑이 기억되어, 인류 스스로 하느님의 사랑을 배워 서로를 사랑하여 함께 구원에 이르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입당송’은 미사의 시작으로, 사제가 교우들이 모여 있는 제단으로 나올 때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 목적은 미사를 시작하며 참여하는 신자들의 일치를 이루도록 도움을 주고, 교우들이 전례시기와 축제에 맞게 그 마음을 준비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 노래는 성가대와 교우들이 교대로 하거나, 전원이 하거나 성가대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입당 예식 때에 노래가 없는 경우에는 미사경본에 있는 입당송을 교우들이 외우거나, 그중 몇 사람이나 주송자 또는 사제가 외우도록 합니다.

사제와 복사들은 사제석까지 와서 제단에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제단에 경의를 표시하기 위해 사제와 복사들은 제단에 깊이 절을 하게 되는데, 지역의 풍습에 따라 제단에 입을 맞추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단에 인사를 올린 다음 제단에 향을 드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사와 분향은 이제 지내게 되는 미사에 주님의 몸과 피가 봉헌되며, 그 그리스도께서 미사를 드리고 있는 하느님 백성의 중심이 되며 주춧돌이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미사의 시작 ― 사제가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하면 신자들은 “아멘!”이라고 응답합니다. 이는 우리의 제사에 하느님을 초대하는 것이며, 우리가 받은 세례를 기억하고 우리가 고백하는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내는 미사는 성부.성자.성령의 하느님과 그를 믿는 신자들의 공동체가 하나가 되는 제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이 미사를 통해 사랑을 전하시며, 신자 공동체는 하느님께 하나되고 갈림 없는 흠숭을 드리는 것입니다.

교우들에 대한 ‘인사’에 관해서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사제가 인사하면 신자들은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응답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하느님백성 모두와 함께 계십니다.’라는 뜻이며, 신자들의 응답은 하느님과 사제와 신자가 모두 함께하고 있다는 신비로운 미사에 대한 고백입니다. 이같이 하느님께서는 미사 안에서 온전히 현존하고 계십니다. 미사는 단순하게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시고 함께 서로를 섬기고 나누는 사랑의 잔치입니다.

개회식 때의 ‘참회’에 관해서입니다. 이는 거룩한 미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들을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개인적인 잘못에 대한 참회뿐만 아니라 우리가 몸과 마음을 담고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참회도 있어야 합니다. 나만이 깨끗하다고 깨끗하게 살 수는 없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잘못에 대해 공동의 책임을 갖고 있음을 마음으로부터 고백하고, 이를 반성하고 참회하여 더 나은 하느님 나라로 나아가기 위한 참회인 것입니다.

참회 후에는 ‘하느님의 자비’를 구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잘못을 저지르고 다시금 하느님 대전에서 새롭게 살고자 하오니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어여삐 보아주시라는 기도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한계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모두가 다 잘 살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용서하시고 먼저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자비가 없다면 구원에 이르기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느님께 의탁하여 자비를 구하는 백성들의 노래는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입니다.

‘대영광송’은 교회가 성령 안에 모여 성부와 어린양에게 영광을 드리며 간구하는 오랜 전통을 가진 훌륭한 성시입니다. 감사가와 함께 초대교회 신자들이 부르던 성서의 영감을 받은 시편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입니다. 성탄 때의 천사들이 노래하던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으로 시작하는 대영광송은 하느님 아버지와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삼위 모두에 대한 영광을 드리는 노래입니다. 대림절과 사순절이 아닌 모든 주일과 대축일 그리고 특수한 행사 때에 노래하든지 외우게 됩니다.

‘본기도’는 교우들의 온 마음을 모아 사제가 하느님께 봉헌하는 기도입니다. 따라서 이 기도를 ‘모은 기도’라고도 부릅니다. 그 미사의 주제가 드러나는 기도로, 사제는 그날의 축제에 대한 의미를 담아 바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로 바쳐지는 기도입니다. 그러기에 비록 사제 혼자 기도하여도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은 바로 자신들의 기도로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사제만의 기도가 아닌 공동체 백성 모두가 참여하는 기도가 바로 본기도이기에, 기도가 끝난 후에 신자들은 마음을 결합하여 동의하며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말씀의 전례’는 성경의 독서들과 그 사이를 잇는 시편으로 되어 있습니다. 독서는 구약과 신약의 서간을 전례력에 따라 봉독하고, 복음은 4복음서를 역시 전례력에 따라 봉독하는 것입니다. 이 독서에는 미사에서 드러나는 독특한 의미가 있는데, 바로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입니다. 독서자와 사제가 독서와 복음을 낭독하지만 말씀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 자신이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독서를 읽은 후에는 반드시 “주님의 말씀입니다.”라고 선포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신자들을 구원에 이르는 길로 이끌고 계십니다.

‘제1독서’ 끝에 불리는 노래는 ‘층계송’이라고도 하였던 환호성입니다. 말씀 가운데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에 대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담아 환호하는 소리로, 시편 가운데 그날의 독서와 관련 있는 내용을 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화답 성가로 다른 노래를 부를 경우 꼭 독서와 일치하지 않아도 됩니다. 원래 시구를 읽는 성가대원은 독경대나 다른 적당한 자리에서 시구를 노래하고, 신자들은 앉아서 후렴을 같이 합니다. 바로 이 성가대원이 독경대의 층계에 서서 노래를 불렀던 이유 때문에 ‘층계송’이라고 불려왔던 것입니다.

복음 전에는 ‘복음환호송’을 노래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알렐루야’라고 하여 기쁨을 나타내는 시구였는데, 사순시기에는 기쁨의 알렐루야를 부르지 못하므로 전례시기 전체를 대상으로 하기에 ‘복음환호성’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알렐루야를 부르지 못하는 사순시기에는 시나 복음 전 성구만 노래하며 성가대나 성가대원이 부를 수 있고, 신자들과 함께 외울 수도 있습니다. ‘부속가’라고 불리는 송가도 있는데, 부활과 성령강림 날에는 의무적으로, 다른 날에는 자유로이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말씀의 전례 부분에서 가장 뛰어난 품위를 지니고 있는 독서입니다. 복음은 독서와 달리 행렬과 환호와 강복과 기도가 먼저 이루어집니다. 또한 아무나 읽을 수 없고, 부제나 부제가 없을 때에는 사제만이 낭독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그리스도 자신이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어느 복음사가가 전하는 거룩한 복음입니다.’라고 하면 ‘주님 영광받으소서.’라고 작은 십자성호를 세 번 긋는데, 이는 복음말씀을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에 새기며 입으로 고백하겠다는 표시입니다.

복음 낭독이 끝나면 사제는 ‘강론’을 통하여 그날 백성들에게 들려주신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하게 됩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을 체험하며 하느님을 만났던 일들, 또는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백성들이 겪게 되는 아픔들을 오늘에 맞게 펼쳐주는 것이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오늘 이 자리에서 되새기도록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곧 강론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교 신자 공동체에 있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한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주일과 대축일에는 강론이 끝난 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 신앙고백은 우리가 믿어야 할 신앙의 내용들입니다. 그 주된 내용은 영생을 얻기 위하여 창조로부터 강생을 통해 성령강림과 교회와 성사들의 신비에 대한 동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세 가지 신앙고백이 있는데, 사도들이 직접 예수께로부터 배운 내용이 담긴 사도신경과 성 아타나시오 성인이 삼위일체를 중심으로 한 내용으로 전하는 아타나시오 신경 그리고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작성된 니케아 신경이 있습니다.

‘보편지향기도’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하여 하느님께 의탁하는 기도입니다. 주례사제가 이끄는 말로 기도를 시작하면 신자들이 각 내용의 기도를 드리고, 기도가 끝나면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로 답하게 됩니다. 물론 특수한 공동체의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내용은 첫째, 교회를 위하여. 둘째, 국가와 위정자들을 위하여. 셋째,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하여. 넷째, 지역공동체를 위하여의 순서로 이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사제는 이 모든 기도를 모아 성자를 통해 성부께 바치는 기도로 맺게 됩니다.

보편지향기도가 끝나면 ‘봉헌 성가’가 시작되며 ‘성찬전례’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성찬전례’는 그리스도께서 파스카의 제사와 잔치를 설정하심으로 교회 안에서 십자가상 미사성제가 계속된 것입니다. 사제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미사 때마다 되풀이하게 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이 예식을 행함으로 당신을 기념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매 미사 때마다 이루어지는 성찬전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 제사와 동일하게 맞추어 놓은 것입니다.

‘예물 봉헌’은 장엄한 행렬로 이루어집니다. 이 봉헌 예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될 빵과 포도주입니다. 원래 초대교회에서는 이 빵과 포도주를 자신의 집에서 직접 가져왔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나누고 섬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때에 가난한 형제들과 교회를 위한 금전이나 혹은 다른 예물도 함께 봉헌하게 됩니다. 이처럼 예물이 봉헌되고 제대에서는 성체포를 깔고 빵과 포도주, 곧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식탁으로 준비됩니다.

교회는 주님의 만찬을 거행할 때 항상 빵과 포도주와 물을 사용해 왔습니다. 이 빵과 포도주와 물의 사용에는 엄격한 규정이 적용됩니다. 미사 거행을 위한 빵은 순수한 밀가루를 사용하여야 하며, 어떠한 첨가물도 넣지 않은 누룩 없는 빵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포도주 역시 포도 열매로 생산된 순수 자연 술이어야 합니다. 이 같은 엄격한 규정은 하느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사가 불순물로 인하여 그 품위를 잃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며,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과 피로 실재로 우리에게 나누어진다는 신앙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사제가 드리는 빵과 포도주를 바치는 기도는 하느님의 크고도 크신 은혜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이 빵과 포도주를 하느님께 다시 바치오니 이를 우리의 생명의 양식과 음식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향유하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고백이며 사람이나 자연이나 할 것 없이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 역시 하느님이시라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주신 이 선물을 나나 우리만이 간직하고 살아갈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겠다는 다짐입니다.

성찬전례 시 포도주를 봉헌하게 되는데, 이때 물을 약간 섞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창으로 찔린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흘러 나왔음을 기념합니다. 또 한 가지 의미로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취하셔서 사람이 되셨음을 드러냅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거룩한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아울러 인간인 우리도 하느님의 신성에 조금이나마 참여하게 해달라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신성과 인성의 이 같은 어울림은 하느님의 인간 사랑과 이에 대한 인간의 공경을 나타냅니다.

빵과 포도주를 바친 사제는 곧 손을 씻게 됩니다. 모든 제사에서는 제물을 바치게 되는데, 옛날에는 그 제물로 동물을 잡아 바쳤습니다. 때문에 동물을 잡을 때 제사장의 손에는 피와 내장 등의 여러 가지 불순물이 묻게 됩니다. 이 같은 손으로는 제사를 바칠 수 없기에 제물을 준비한 후에는 손을 씻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이 오늘날에까지 이르러 사제가 손을 씻는 것인데, 현재의 의미로는 하느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사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봉헌함을 나타냅니다.

미사 때에 제물을 바친 사제는 신자들에게 이 제사를 하느님께서 즐겨 받으시도록 기도하자고 권유합니다. 이에 신자들은 ‘이 미사가 하느님께는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는 구원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처럼 미사성제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는 서로를 살려주는 생명의 관계요, 공동체 구성원 서로서로의 관계에 있어서는 서로를 나누는 기쁨의 관계를 맺어주는 추억의 되살림입니다. 제물을 바치는 사람의 마음이,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엉뚱한 곳에 가 있다면 그 제물과 기도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런 기도일 것입니다.

‘예물기도’는 이미 준비된 예물을 주님께 바치는 결정적인 기도입니다. 하느님께서 지극한 사랑으로 마련해 주신 것을 봉헌하면서 그 지극한 사랑이 영원히 우리 부족한 사람들에게 지속될 수 있게 해주십사고 바치는 기도입니다. 따라서 성자를 통해 성부께 바쳐지는 이 기도는 한없는 자기 부족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너무도 부족한 우리이기에 한없이 많은 부분을 하느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 부족함에 고개를 묻고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족한 부분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받아주시라는 기도입니다.

‘감사송’은 우리들에게 베푸신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감사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어 인간들로 하여금 그 세상을 다스리게 하심에 감사드림을 시작으로 하여, 부족한 인간을 위해 당신 아드님을 보내주시고 마침내 그 아드님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심에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 아드님이 죽음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하느님은 모든 천사와 성인과 사람들 모두에게 찬미와 영광을 받으시라는 기도이며, 곧이어 ‘거룩하시다.’로 하느님께 직접적인 찬미의 노래를 드립니다.

제물로 봉헌된 빵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뀌는 것을 ‘성변화’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기도를 ‘성찬기도’, 곧 ‘감사기도’라고 합니다. 이때 사제는 두 손을 빵과 포도주를 향하여 덮게 되고, 복사는 신자들의 주위를 환기시키기 위하여 종을 칠 수 있습니다. 감사기도를 드리는 동안 우리가 빵과 포도주로 봉헌한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뀌어, 미사를 드리는 신자들은 이제 빵과 포도주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미사 중 종을 치는 것은 신자들의 주위를 환기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미사 중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종을 치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성변화 때와 성체와 성혈을 들어 하느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 계심을 절정으로 느낍니다. 이때 종을 치는 것은 신자들로 하여금 생각과 말과 행위의 모든 것을 집중하게 합니다. 예로부터 종은 화재나 수재 등 긴급한 구조를 바라는 상황이 발생하거나 모든 사람들이 기뻐해야 할 환희의 순간에 치게 됩니다. 미사의 종소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하여 우리와 함께 계시는 환희를 함께 느끼는 미사의 절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에 말씀과 동작으로 ‘성찬제사’를 세우셨습니다. 빵을 드시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며 ‘받아 먹어라!’고 말씀하시고, 포도주를 드시고 ‘받아 마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이 빵과 포도주는 당신의 몸과 피로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것이며 앞으로도 이 신비로운 예식을 계속 거행하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찬제사는 오늘날에도 매 미사 때에 사제를 통한 그리스도의 말씀과 동작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신앙의 신비여!’는 축성된 빵과 포도주가 성찬례를 세우신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되어 우리에게 나누어주시는 신비를 환호로서 노래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눈으로 보고 신앙의 마음으로 다가서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신비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나누어주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먹고 마심으로 구원이 되기에 언제나 이 신비를 가슴에 새기며 이미 사랑으로 받은 구원의 기쁨을 세상 곳곳에 전하겠다는 굳은 다짐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몸과 피는 언제나 그를 받아 먹고 마시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살리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그러기에 이를 기념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몸을 바쳐 인간을 사랑하셨음과 같이 그를 받아 모시는 신자들이 이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성찬례에서만 그 기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생활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교회와 신자들의 자기생활의 봉헌이며, 이 봉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감사기도’에서 사제는 성령으로 우리 모두가 한 몸을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예로부터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먹고 마시는 신자들은 같은 주님을 모시기에 한 몸을 이룬다고 고백해 왔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 있든지 거행되는 성찬제사를 봉헌한다면 일치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이렇듯 같은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고백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들입니다. 바로 여기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고백이 이루어집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눈에 보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넓게 보아 천상교회와 지상교회의 통공을 이야기합니다. 통공이란 서로 그 공이 나누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미 죽은 이들의 공로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며, 살아 있는 우리들의 기도는 죽은 이들의 구원에 보탬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바치는 기도가 자신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교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 모두에게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바치는 기도가 한 몸을 이루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위한 사랑의 통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사기도의 마지막에 사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 빵과 포도주를 들고 하느님께 대한 영광을 노래합니다.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시어 삼위일체의 신비로서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영원히 영예와 영광을 받으시라는 노래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기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는 기쁨에 찬 영광송입니다. 이에 백성들은 ‘아멘!’이라는 우렁찬 함성으로 응답하여 사제와 백성이 한 목소리로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장엄한 노래로 감사기도를 마무리합니다.

‘주님의 기도’로 미사는 영성체 예식에 들어갑니다. ‘주님의 기도’는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의 요구에 예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그 내용은 하느님의 뜻이 우리들에게 전해져서 우리들이 하느님의 나라에 살게 해달라는 기도와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모든 인류에게 용서를 주시고 우리를 악에서 보호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은 미래에 갈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나라가 되도록 우리를 일깨우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신자들은 예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시어 평화를 주셨음을 상기합니다. 그리고 이 평화가 인류 안에서도 서로 나누어지기를 갈망하는 인사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 형제, 내 이웃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서로를 배려하고 지지하는 강한 연대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같은 빵을 나누는 사람들의 평화의 연대는 서로를 굳건하게 맺어주는 강력한 끈입니다. 또한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신 가장 큰 이유입니다.

평화의 인사 후에 사제는 빵을 쪼개는 동작을 합니다.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나누어 우리들에게 주셨음을 상기하며 이처럼 나누어진 빵이 받아 먹는 모든 이들을 하나로 묶는 신비를 드러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제는 빵을 조금 떼어 포도주에 담그는데, 이는 몸과 피가 함께하여 온전히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우리에게 나누어짐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빵의 나눔은 성찬제를 나눔의 잔치로 발전하게 합니다. 빵을 나눔으로써 생명을 나누는 믿는 사람들의 나눔은 우리들 가운데 더불어 살아가는 참된 하느님 나라를 구현하게 합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우리를 위해 제사의 제물이 되신 주님을 다시금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몸을 제물로 바치셨으니 그 사랑으로 우리의 부족함과 어리석음을 메우시어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더불어 그 부족한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과 인간을 끊임없이 사랑하며 살도록 해달라는 고백이며 청원의 기도입니다. 자비와 평화는 그리스도의 선물입니다. 선물로 받은 그 자비와 평화가 이제 우리 삶에까지 펼쳐져야 한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영성체 전 기도’는 사제가 낮은 목소리로 영성체를 준비하며 바치는 기도입니다. ‘언제나 부족한 인간으로서 하느님의 그 크신 생명의 나눔에 감사하며 받아 모시오니, 부족함을 탓하지 마시고 오히려 지켜주십시오.’라고 바치는 기도입니다. 또한 제대에 깊게 절하며 사제 개인뿐 아니라 모든 하느님 백성들의 구원을 간구합니다. 언제나 사랑으로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더 이상 우리가 사는 세상에 분쟁과 반목 없이 평화로운 하느님 나라를 구현하고자 하는 겸손과 신뢰의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후에 사제는 빵과 포도주를 높이 쳐들고 백성들을 이 잔치에 초대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잔치에 초대하십니다. 이 잔치의 초대는 바로 하느님 나라에로의 초대이며, 초대받은 사람들이 합당치는 않으나 주님의 사랑으로 저희를 이끌어달라는 응답을 함으로써 잔치는 이루어집니다. 이제 이 잔치는 영성체로 믿는 사람들 안에서 확고히 펼쳐지며 모든 부정적인 요소들을 막아내고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모심으로써 우리 모두가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영성체송’은 매 미사 때마다 다르게 바쳐지는데, 이는 최후의 만찬 후에 제자들과 함께 올리브 동산에 오르시면서 예수님 자신이 읊으셨던 시편을 상기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신자들과 함께 바치는 이 노래는 그리스도의 성찬에 초대받았음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노래입니다. 영성체송은 사제가 영성체할 때 시작하고 신자들이 영성체하는 동안 계속하다가 적당한 때에 끝마칩니다. 시편을 노래하거나 노래로 하지 않을 경우에는 미사경본의 영성체송을 신자들이 외우게 됩니다.

‘영성체’는 미사 중 성찬식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것을 말합니다. 신자들은 이 영성체로써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며 신자들과도 하나가 됩니다. 영성체의 방법으로는 성체만 영하는 단형영성체와 성체와 성혈을 함께 영하는 양형영성체가 있는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형영성체만 합니다. 성체를 모시기 위해서는 대죄 중에 있지 않아야 하고, 약과 물을 제외한 음식물을 한 시간 전에는 먹지 말아야 하는 공심재를 지켜야 합니다. 현 교회법에는 신자들의 의무로서 일 년에 한 번 부활절에 성체를 영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영성체를 마치고 남은 제병을 감실로 옮긴 후 사제는 성작과 성합을 물로 깨끗하게 씻어냅니다. 빵과 포도주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이기에 그릇에 남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릇을 씻으면서 사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몸과 피가 우리를 영생으로 이끄는 생명의 약이 되게 해달라고 자그마한 목소리로 기도합니다. 이 행위와 기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으시고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제는 우리들 삶의 원천이요, 양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신 참으로 소중하신 보물을 그 뜻에 맞게 간직하고 펼치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미사 때에 제일 늦게 바치는 기도가 ‘영성체 후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생명에 대한 감사의 기도와 이 성체로써 우리를 하느님의 사람으로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청원의 기도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제 성체를 받아 모신 신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고백한 것과 같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것을 체험하고 이에 대한 기도의 마음을 모아 사제가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성체 후 기도’ 역시 백성들의 마음을 모아 하느님께 올리는 공동체의 모음 기도인 것입니다.

교회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전례를 마친 후에 사제는 ‘하느님의 강복’을 백성들에게 주게 됩니다. 이 강복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공동체의 모임을 마친 후에 세상에 파견되어 각자의 사명을 펼치는데, 필요한 힘과 사랑을 내려주는 가시적인 말씀과 표지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구원하시려 하였듯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제 세상으로 나아가면서 이 같은 하느님의 구원의 표지로 받아가는 것입니다. 사제가 십자가 표시를 그으면 신자들도 따라 그으면서 ‘아멘!’으로 크게 응답하여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미사는 ‘파견’으로 마치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등의 말로 사제가 파견하면 신자들은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응답합니다. 이 파견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당신과 함께 삶을 나누시며 알려주신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신 후에 둘씩 짝지어 고을마다 보내신 것에서 유래합니다. 따라서 이 파견은 단순한 마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친교와 나눔은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까지 펼쳐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선포의 장인 ‘파견’으로 미사를 마치게 됩니다.

미사 때 이루어지는 동작의 의미

    『갓 신자 생활을 시작한 한 신자가 미사 때 이루어지는 동작들 하나하나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게 물어왔을 때, 신자 생활을 꽤 오래한 저 역시 그 의미도 모른 채 그저 습관적으로 신자들의 동작을 따라 하고, 신부님이 행하시는 동작들에 대해서도 그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 왔음을 알았을 때 참 부끄럽게 생각하였습니다. 미사 때 행하는 동작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간이 천사와 같은 순수한 영적 존재라면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영적으로 직접 전달할 수 있을 터이지만, 불행히도 인간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말과 몸짓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의사를 상대에게 직접 전하기가 힘듦을 깨달은 인류는 끊임없이 각 지역과 문화에 따라 언어적 표현과 행위적 표현(몸짓)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언어 습관과 문화가 온 인류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인사하는 방식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고개를 숙이거나 허리를 숙이는 방식을 사용하는 반면, 서양에서는 볼에 입을 맞추거나 악수를 함으로써 반가움을 드러냅니다. 같은 지역, 같은 문화권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시대에 따라 몸짓과 언어의 의미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때의 인사 방식과 지금의 인사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동작의 종류

    우리 인간의 동작들이 다 똑같은 기능과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전례 안에서 행해지는 동작들을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겠습니다.

    1. 첫째 기능적 동작입니다. 즉 어떤 일을 행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동작들입니다. 예를 들어 성작이나 손을 닦는 행위, 제대를 향해 나아가는 행렬 등이 바로 그러합니다.
    2. 둘째 말과 동작을 함께 행함으로써 그 행위가 무엇을 뜻하는가를 드러내는 동작입니다. 그러한 동작으로 우리가 참회기도 때 “제 탓이요.” 하면서 가슴을 치는 동작을 들 수 있겠습니다.
    3. 셋째 온전히 상징적인 동작이 있습니다. 세례 때 새로 영세 받은 이에게 흰옷과 초를 주는 행위, 성찬례(미사) 때 사제가 영성체를 하기 전 성체 조각을 성혈과 섞는 행위가 바로 그러합니다.

    이렇듯 여러 가지 전례 동작 가운데 우리는 현재 전례, 특히 미사 안에서 발견되는 동작들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만 다루고자 합니다.

     

    성호(聖號)를 그음

    성호를 긋는다는 것은 성호의 대상이 되는 물건이나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는 행위로 해석되었으니, 신자들이 성호를 긋는 동작을 하였다는 것은 2세기말의 교부 떼르뚤리아노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동작을 할 때마다, 옷을 입고 신발을 신을 때, … 일상생활의 모든 동작마다 우리는 십자가 표시(성호)를 긋는다.’
    성호를 긋는 동작은 사람이나 물건 모두에 대해 할 수 있으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 또는 다른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서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이마에만 엄지손가락으로 십자를 긋는 양식이었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특히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하는 아리아니즘을 반박하기 위해 삼위일체를 상징하고자 이마에서 심장으로 그리고 가슴 위 부분을 긋는 현대식의 성호 방식이 도입되었습니다. 이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라는 삼위일체 기도가 첨가되었습니다.성당에 들어설 때 성수를 찍어 십자를 긋는 행위와, 미사 시작 때 사제가 십자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할 때 신자들도 십자를 그으며 “아멘!” 하고 대답하는 것은 세례 때의 우리 신앙 고백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핵심은 바로 성부.성자.성령께 대한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수(聖水)가 세례수를 상기시키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는 말 역시 세례를 베풀 때 하는 기도문이라는 데서 이러한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복음을 읽기 전 신자들이 모두 이마와 입술, 심장(가슴)에 엄지손가락으로 십자를 긋는데, 이 역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행위라 하겠습니다. 어떤 이는 이마에 긋는 십자 성호는 복음에 대한 이해를, 입술에 긋는 십자 성호는 복음 선포를, 가슴에 긋는 십자 성호는 복음을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것을 드러낸다고 해석하는데, 이러한 해석이 뚜렷한 역사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위에서 말한 삼위일체 신앙과 연계시켜 해석한다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해석이라고 봅니다.

     

    일어섬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일어섬은 비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존경과 공경의 표시였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 또 다른 의미를 덧붙였으니, 그것은 자신들이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갖는 자유를, 종살이에서 벗어난 자유인임을, 동시에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함을 드러내는 표지였습니다. 때문에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년)는 부활의 기쁨을 드러내는 주일과 파스카 시기(부활시기)에 무릎을 꿇지 말고 서서 예배를 보도록 의무화시켰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이보다 훨씬 전인 2세기말의 교부(敎父) 떼르뚤리아노가 주장하던 바였습니다.또한 일어섬은 희망과 믿음으로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의 자세이자, 사제직을 수행하는 이의 자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제직이란, 서품성사를 통해 사제가 된 이들의 직분만을 뜻하지 않고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물려받은 모든 신자를 말합니다.

    성찬례 안에서만 그 뜻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회당에서 성서를 읽으실 때 일어서셨다는 복음의 기술(루카 4,16)을 미루어 알 수 있듯이, 서 있는 동작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경청과 존경심을 가리킵니다. ‘알렐루야’와 더불어 시작되는 복음 낭독 때 우리 모두가 일어서는 것은 바로 사제를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께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입니다.

    서 있는 자세는 또한 마르 11,25(여러분이 서서 기도하려고 할 때에 …)와 루카 18,11-13(바리사이와 세리에 관한 비유)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느님께 기도하는 이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사제가 성당에 입당할 때부터 본기도를 할 때까지, 신앙고백부터 보편 지향 기도를 할 때까지, 이외 미사 중에 일어서는 것은 사제와 더불어서 함께 기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 베네딕토에 의하면 수도자들은 시편을 노래할 때 서서 하였다고 합니다.

     

    앉음

    마태오 복음사가의 묘사에 따르면(마태 5,1 이하) 산에서 백성을 가르치실 때 예수님은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자세는 팔레스티나를 위시한 당시 중동 지방에서 가르침을 베푸는 스승, 공식 직무를 수행하는 관리, 재판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품위를 갖고 있는 이를 드러내는 전형적인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옛 성당들의 모자이크를 보면 자리에 앉아 가르치시는 스승으로서의 예수님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앉은 자세는 스승의 위엄과 권위를 드러낸다고 하겠습니다. 마르 3,31 이하를 보면 예수님이 가르치실 때 제자들이 그분 주위에 모여 앉아 말씀을 경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듯이, 앉아 있는 자세는 또한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스승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작이기도 합니다. 미사 때, 특히 주일 미사의 제1독서와 제2독서 때 신자들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입니다.

    무릎꿇음

    누군가에게 용서를 청할 때, 또는 무엇인가 간절히 애원할 일이 있을 때 우리는 무릎을 꿇거나 엎드립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엎드리거나 무릎 꿇는 자세는 상대에 대한 나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그에게 자비를 바랄 때 사용되는 자세입니다. 따라서 이 두 자세가 전례 안에서 사용될 때는, 하느님과 교회 앞에서 나의 잘못과 약함을 인정하는 자세이자, 하느님께 간절히 무엇인가를 청하는 자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기 전 올리브 동산에서 고통 중에 하느님께 기도하실 때 취하신 동작이 바로 무릎 꿇는 자세였던 것입니다(루카 22,41).
    그런데 공간이 충분하지 못한 성당에서 엎드리는 자세로 기도하기란 사실상 곤란하므로 무릎 꿇는 자세가 주로 사용된다고 하겠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무릎 꿇는 자세는 고개를 숙이는 자세와 함께 공경을 드러내는 자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감사기도문을 할 때 신자들이 무릎 꿇는 것은 이제 이루어지는 파스카 신비의 재현에 대해 공경심과 경외심을 드러내면서, ‘미천한 나이지만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따라 하느님의 뜻을 좇겠다.’는 마음의 표현입니다.일부 본당에서 성당이 비좁다는 이유로 장궤틀을 없애는 일이 있는데, 이는 우리 몸을 이용하여 더욱 간절한 마음을 표현할 수단 자체를 없앴다는 점에서 잘못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한쪽 무릎을 꿇음

    한쪽 무릎을 꿇는 것은 비그리스도인들의 관행에서 나왔습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신적(神的) 존재인 황제를 공경하고 예배할 때 바로 이 자세를 취했었습니다. 처음엔 이 동작이 비그리스도인들의 자세였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자세를 사용하지 않았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자세의 이교도적 의미가 사라지고 단순히 높은 사람에 대한 존경을 뜻하게 되면서 그리스도교 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자세는 주교나 교황에게 하는 인사로서, 나중에는 제대.십자가.성인 유해.그리스도와 성인들의 상(像) 앞에서도 한쪽 무릎을 꿇어 경의를 드러냈습니다.11세기에는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존하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성체 앞에서 이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고, 16세기에 미사 안에 들어오기 시작하다가 결국 1570년의 비오 5세 로마 미사경본 안에 포함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유럽식의 인사 자세인 이 동작이 우리 실정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기에 한국 교회는 성당에 들어갈 때 허리를 숙여 절하는 것으로 바꾸었는데, 이는 우리 풍습에 맞추었다는 점에서 참 잘된 결정이라 하겠습니다. 이전에는 성체를 모시고 나서 제대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곤 하였는데, 이제는 성체 앞에서나 제대 앞에서 허리를 숙여 절하거나 양쪽 무릎을 다 꿇고 기도하는 방식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고개를 숙임

    고개 숙임은 일반적으로 무릎 꿇는 동작과 거의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느님께 대한 공경과 겸손한 탄원의 의미, 인간이나 물건에 대한 존경심과 공경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광송을 바칠 때.강복 때.하느님의 이름을 발음할 때 공경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느님께 봉사하는 성직자들에게.성인의 이름을 거론할 때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기 위해서, 제대.십자가를 위시한 성물(聖物)에 대한 존중을 나타내기 위해 이 동작을 사용합니다. 이외에도 참회기도 때 참회의 마음을 드러내기 위하여, 무엇을 청하는 기도를 드릴 때 이 동작이 쓰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고개를 숙이는 동작은 무릎을 꿇는 동작을 대신한다 하겠습니다. 중세 이래 영광송 때, 니체아 신경과 “거룩하시도다!”에서 ‘성령’의 이름이 나올 때 고개를 숙이는 관행이 생겼는데,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대신 공경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 예를 들어 제대.성상(聖像).십자가.성직자.성체 앞에서 고개를 숙입니다. 또한 고백기도 때 참회의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감사기도를 바칠 때 성체에 대한 공경을 나타내고자, 사제의 기도에 참여함을 보이기 위해 사제가 기도를 바칠 때 고개를 숙입니다.

    가슴을 침

    이 동작은 고뇌와 슬픔을 표현하는 행위이자 자신의 죄를 뉘우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죄의 뿌리가 바로 심장에 있다는 예로부터의 생각이 이러한 동작을 낳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로 눈을 들 생각도 못하고 자기 가슴을 치며 ‘하느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루카 18,13).우리가 참회기도의 “제 탓이요.” 부분에서 가슴을 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는 세리의 마음이 되기 위한 것이므로 신중하고도 진지한 마음으로 이 동작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일부 신자들이 성체를 받들어 올릴 때 공경심을 드러내기 위해 가슴을 치기도 하는데, 이는 본래의 의미와는 동떨어진 것이므로 전례 안에서 이 순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전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동작도 일종의 언어입니다. 사제가 어떤 동작을 취한다 해서 그것이 마술적 힘을 가지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전통적으로 어떤 동작은 어떤 의미를 가진다는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진 약속 때문에 각 동작들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신자들이 취하는 동작의 의미를 보았으므로, 여기서는 사제가 취하는 자세가 뜻하는 바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팔을 벌림

    현재 우리의 전례를 보면, 팔을 벌리는 자세는 주로 사제가 취하는 자세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팔을 벌리는 자세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매달리실 때의 자세를 모방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중세 때 미사를 신비적으로 해석하면서 각 동작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려던 관행에서 나온 것으로서 사실 역사적 근거가 없는 해석이라 할 것입니다. 팔을 벌리는 자세는 하늘을 향해 내 마음을 들어 올리는 자세입니다. 하늘은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추정되어 왔고, 따라서 팔을 벌리는 자세는 하느님께 기도하는 자세입니다. 따라서 초기교회 때는 사제뿐만 아니라 신자라면 누구나 하느님께 기도를 바칠 때 팔을 벌리는 자세로 하였습니다. 일부 본당에서 ‘주의 기도’를 바칠 때 신자들이 사제와 더불어 팔을 들어 기도하는데, 신자들이 전례 안에서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한 방식으로 권장될 만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행렬

    다른 전례 동작들과 마찬가지로 행렬 또한 기능적 목적과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작 예식 때 제대를 향한 사제와 봉사자들의 행렬.봉헌 행렬.영성체 행렬, 이렇게 세 번의 행렬이 성찬례(미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각 행렬이 미사를 시작하기 위해 제대로 나아가는 것.봉헌을 하는 것.영성체를 하는 것과 같은 기능적 목적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 세 행렬은 다음과 같은 상징적 의미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함과 동시에 성찬례가 이루어지는 공간인 제대를 향해 나아감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는 세상 종말을 향해 순례하는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중세 초기에 만들어진 바실리카 양식(직사각형의 내부 구조를 가지고 있음)의 성당들을 보면 벽에 그림이나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제대 또는 제대 위 벽이나 천장에 그려져 있는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일종의 종말론적인 행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며, 우리의 행렬과 일맥상통한다 하겠습니다.

    안수(按手)

    야곱이 자기 열두 아들들의 머리에 팔을 얹어 축복해 주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창세 48,14 이하), 안수는 무엇보다도 축복의 자세입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속죄의 제물로 짐승을 가져오면 사제는 그 짐승에게 안수를 한 다음 죄인 대신 희생 제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나오는데(탈출 29,10), 여기서 안수는 짐승을 가져온 이와 짐승을 동일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모세의 안수를 받은 여호수아가 모세의 직분을 이어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갔다는 기록에 드러나 있듯이, 안수는 직무의 전달과 그 직무를 수행할 능력의 전수를 뜻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쳐 주실 때 안수를 하셨다고 했습니다. 또 세례 때 안수를 해줌으로써 세례 받은 이들이 성령을 받게 되었음을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안수는 무엇보다도 성령의 선물을 뜻했습니다. 축복도, 직무의 전달도, 병의 치유도 모두 성령의 선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미사에서의 안수는 사제가 손을 모아 빵과 포도주 위에 펴 얹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이때의 의미는 성령이 빵과 포도주 위에 내려오시어 그것들을 거룩하게 만들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켜 달라는 청원의 의미입니다. 전례학에서는 이것을 에피클레시스(epiclesis)라고 부르는데, 성령을 청하는 기도라는 뜻입니다(여기서는 이 말을 ‘성령청원기도’라고 번역했음).

    빵과 성작을 받들어 올림

    이 동작은 성찬례(미사) 안에서 세 번 이루어집니다. 성찬 제정의 말씀 때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 받아라. … 받아 마셔라.”, 감사기도문 끝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라는 마침 영광송 때부터 신자들이 “아멘!”으로 으로 응답하기까지, 마지막으로 평화의 인사를 한 다음 “하느님의 어린양 ….”이라고 말할 때입니다.성찬 제정 말씀 다음에 빵과 성작을 받들어 올리는 것은, 이 순간 빵과 포도주가 성체와 성혈로 변한다는 신학에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주님의 몸과 피로 변한 빵과 포도주를 보고 싶어 하는 신자들의 열망을 채워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2세기에 빵을, 13세기에는 성작을 들어 올리는 관행이 나왔습니다. 이로써 마침 영광송 때 빵과 성작을 받들어 올리는 동작으로, 성찬례 안에서 이루어진 파스카 신비를 경하하는 의미가 상당히 축소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성반과 성작을 받들어 올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관심과 경외심을 끌어내면서, 성체와 성혈에 대한 존경심과 신앙을 드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마침 영광송 때의 받들어 올림이 가장 성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감사기도 끝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신도들이 이에 “아멘!”으로 대답하는 순간이야말로 우리 신앙의 절정이기 때문입니다.

미사

미사(초기 원시교회에서는 ‘빵 나눔’, 2-3세기에는 ‘감사기도, 감사’, 4세기에는 ‘제사, 봉헌, 성무, 집회’ 등으로 불려왔다)라는 용어는, 라틴어의 ‘Missa’에서 유래됐으며, 중국어[彌-]나 한국어로 그 발음을 딴 것이다. 이 용어는 5세기부터 서방 라틴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 제사를 재현하며 최후만찬의 양식으로 그리스도 친히 당신 교회 안에 물려준 가톨릭교회의 유일한 만찬제사를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었다.
‘Missa’라는 라틴어는 ‘보내다’, ‘떠나보내다’, ‘파견하다’의 뜻을 가진 ‘Mittere’ 동사에서 파생되었다. 본래 ‘Missa’라는 용어는 교회 안에서 처음 사용된 것이 아니라, 로마시대 일반 사회에서 통용되던 것이다. 즉 ‘Ite, Missa est’라는 관용어는 법정에서 ‘재판이 끝났다.’는 것을 선포한다든지 혹은 황제나 제후, 고관대작들을 알현한 뒤 ‘알현이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이었다. 이것을 교회가 받아들여 거룩한 집회인 미사성제(聖祭)가 끝났음을 선포하는 말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자들이 함께 모이는 집회의 대당적(對當的)인 뜻을 표시하는 모임의 해체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또한 Missa는 ‘파견한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즉 신자들은 미사성제에 참여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무한한 구원의 은총에 감싸였으므로 이제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과 구원의 희소식을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파견된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미사는 가톨릭교회인 천주교의 거룩한 제사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종교는 그것이 어느 것이든 제사의 행위를 거행한다. 이렇듯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종교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제사를 지내왔다. ‘제사’란 우선 인간이 종교의 본질적 요소인 신, 혹은 자연의 힘, 어느 초월자를 인정하고 삼라만상을 창조하고 나 자신을 만드시고 생사대권을 갖고 있는 하느님, 초월자에게 예속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그에게 나의 모든 것을 맡기고 온전히 바치는 종교 심성의 표현이요 행위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느님께 드리는 가장 완전한 최상의 제사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것, 즉 생명을 바치는 행위다(창세 22,1-11). 그러나 인간의 생명을 스스로 죽여 바치는 것은 인간생명의 생사권을 가지신 하느님께서 금지하시므로(천주십계 중 5계), 인간의 생명을 대신할 합당한 제물에 인간생명을 전가시켜 그 제물을 희생시켜 봉헌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구약시대의 제사를 보면, 인류 역사 시초에 아벨과 카인이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아벨은 깨끗하고 살진 양을, 카인은 곡식을 바쳤다. 그런데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외적 행위는 인간의 내적 행위, 즉 겸허하고 충성되고 성실하며 감사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야 하고 그러한 정성과 일치해야 한다. 그래서 성의가 없고 행실이 좋지 않은 카인이 바친 제사는 하느님께 의합하지 않았으며, 성실하고 정성되이 드린 아벨의 제사는 하느님께서 즐겨 받아 주셨다(창세 4,3-5).

인간이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인간이 조물주 하느님께 생명과 구원의 무한한 은혜를 받고 감사하며, 하느님께 잘못과 죄를 범했을 때 용서와 속죄의 제사를 올리며, 또 인간이 행복하고 생의 의의를 찾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은혜를 구하는 등의 여러 가지 목적이 있다. 이와 같이 죄악이 만연했던 세상을 심판하는 홍수에서 구조된 노아는 하느님께 감사의 제사를 올렸고(창세 8,20), 적을 이기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맞이하여 멜키세덱은 빵과 포도주의 제물로 야훼 하느님께 감사의 제사를 올렸다(창세 14,18-19). 아론은 이스라엘 민족의 잘못과 죄악의 용서를 받기 위하여 야훼께 속죄의 제사를 올렸다(레위 16,1-28, 민수 19,1-10). 그리고 이스라엘 전 민족의 축제로 매년 추수 감사제로서 곡식들을 바쳐 야훼 하느님께 감사제를 올리는 초막절,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고 청하는 오순절 축제를 올렸다(탈출 23,16-19, 레위 23,9-22, 민수 28,26-31, 신명 16,9-17). 또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의 고역과 노예 생활에서 탈출할 때 일어났던 기적적 사건과 그들의 구원과 해방을 기념하는 해방절 축제를 대대로 지내왔다(탈출 12,1-14, 신명 1-8, 민수 9,1-14, 레위 23,4-8).

인간의 구원과 영원한 행복을 원하시는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과 해방을 기념하며 지내던 구약의 제사는 전 인류의 구원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무결한 신약의 제사를 준비시키는 예시였다. 야훼 하느님은 약속하신 대로(창세 3,15, 시편 110,1-4) 당신 독생 성자를 세상에 보내시어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요한 3,15-17) 완전무결한 제사를 드리도록 하였다. 하느님의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는 갈바리아 십자가 상에서 당신 자신을 온전히 희생 제물로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온 인류를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구원하였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키는 대사제로서 당신 자신을 우리 인류의 죄악에 대한 대속 제물로 바치실 것을 예견하고, 당신의 몸과 피를 사도들과 함께 최후만찬을 하며 내어주었다. 빵을 드시고 사례하신 후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바칠 내 몸이니라.” 또 저녁을 잡수신 후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사례하신 다음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너희와 모든 이의 죄 사함을 위하여 흘릴 피니라. 너희는 이 예를 행함으로써 나를 기념하라.”(마르 14,22-26, 마태 26,26-30, 루카 22,14-20). 이렇게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 제사를 새롭게 하며, 죽음에서 영원한 삶으로의 파스카 신비의 재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최후만찬의 기념제로, 우리 인간들과 함께 그리스도 자신을 완전한 제물로서 신비롭게 하느님께 바치는 신약의 유일한 제사며 성찬이다.

제사의 행위 중에는 제물로 바쳐진 것을 함께 나누어 먹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 이것을 음복(飮福)이라 한다. 미사의 행위 안에서도 “너희는 받아먹어라”, “너희는 받아 마셔라.”고 한 예수의 말씀과 같이 제찬봉령(祭粲奉領)이라고도 하는 영성체(領聖體)가 있다. 따라서 미사는 다른 제사도 마찬가지지만 성찬의 잔치다. 봉헌된 제물을 제사에 참여한 자들이 함께 나누어 먹는 잔치의 행위는, 제물을 받으시는 하느님과 제물을 바치는 자들과의 일치를 이루게 하며, ‘같은 빵과 같은 잔’을, 즉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는 모든 이로 하여금 성령의 힘으로 하나가 되게 한다(미사 성찬기도문 참조). 성찬에 참여한 자들이 제물을 함께 나누어 먹음으로써 하느님과 인간과의 주고받는 통교가 이루어진다. 즉 하느님은 인간에게 구원과 진리와 생명을 주시고 급기야는 당신 자신을 주시며, 인간은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린다.

그뿐 아니라 이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미사성제인 이 즐거운 잔치에 참여하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함께 나눌 때, 우리 순례자의 목적지인 천상에서 이루어지는 영광과 승리의 축제를 미리 맛보고 거기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천상에서 참된 성전과 장막의 사제로서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요한 계시록 21,2, 콜로 3,1, 히브 8,2). 그리고 우리는 지상의 미사성제로써 하늘의 만군의 무리와 더불어 주께 영광의 찬미가를 부르며, 성인들을 기억하고 공경하면서 그들의 일치에 한 몫을 차지하고 그들의 전구(轉求)를 구하며,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까지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선포하며 기다린다(전례헌장 8 참조). 이와 같이 가톨릭교회의 유일한 제사인 미사성제는 천상천하가 함께 어울려서 구원의 은총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성스러운 잔치다.

이러한 미사의 형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만찬에서 유래한다. 이 최후만찬은 고양(羔羊)의 피로써 구원된 이스라엘 민족이 대대로 기념해 오던 유태교의 파스카 축제 양식을 본 딴 것이지만, 그 내용과 차원에 있어 월등할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신약의 파스카 잔치인 것이다. 최후만찬의 미사의 첫 형태는 시대를 거쳐 오면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초기 공동체에서는 최후만찬 때와 같이 식탁 공동체에서 성찬례가 거행되었다. 즉 일반식사와 구별된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소공동체가 일반 식사를 하면서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여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이루어 먹고 마시는 성찬을 하였다(루카 22,20, 1코린 11,17-34, 사도 2,46). 그러나 이러한 식탁 소공동체로서의 성찬례는 신자 공동체가 비대해지므로 거기에서 자연적으로 생기는 실질적인 기술 문제와 난관과 남용의 우려로 인해 일반식사와 분리하여 따로 성찬례를 거행하였다(마태 26,26-29, 마르 14,22-25). 그 뒤 성찬례가 일반식사와 분리되어 거행될 때, 이 성찬례 전레의 성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마음의 타당한 준비를 갖추고자 성서봉독을 결부시켰다. 즉 유태인들이 샤밧 날 아침에 그들 회당에서 거행하였고, 그를 초기 그리스도 신자들도 받아들여 아침.저녁 기도로 실천하여 오던 성서봉독 예배를 성찬례 전에 거행하게 되었다.

성서봉독 예배인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가 연결되어 미사의 형태를 이룬 것은 대략 150년경이다(Justinus Martyr, Apologia I, C. 65-67). 그 뒤 그리스도교의 신앙 전파로 여러 민족이 그리스도교로 귀화하고, 따라서 각 민족과 지역의 풍습과 전통이 다르므로 미사의 본질적 요소를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변화가 가능한 외적 요소와 기도들이 첨가되고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150년경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가 미사의 구성요소가 된 뒤 오늘날과 같은 미사의 형태가 완성된 것은 7세기 중엽이라고 할 수 있다. 3세기 초에 거행되던 미사 거행 양식의 중요 요소들을 보면, 참회 예식(시초에는 부복자세, 후대에 와서 죄고백의 행위와 기도), 성서봉독(사도행전, 서간, 구약에서 발췌), 대응송, 강론, 평화의 인사, 예물 준비, 성찬기도, 영성체로 끝났다. 그 뒤 5세기 초에는 이상의 요소들에 공동기도, 예물봉헌, 성찬기도의 고정(현재 사용되는 제1 성찬기도문), 주의 기도가 첨가되었다. 그리고 6세기 초엽에는 입당송, 기리에(‘천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의 뜻을 가진 기도문), 대영광송, 본기도, 봉헌송, 봉헌 기도, 거룩하시다, 영성체송, 영성체 후 기도 등이 첨가되었다. 7세기 중엽까지는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성체와 성혈을 조금 들음, 천주의 어린 양 등이 도입 첨가되었다.

이와 같이 7세기 중엽에 와서는 오늘날의 서방 라틴교회 미사 형태가 거의 완성되었으며, 8-10세기에 유럽 지방에서 낮은 목소리로 하는 사적 기도들이 특히 입당과 봉헌과 영성체 부분에 삽입됐을 뿐이다. 그 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의 전례쇄신 의도에 따라 새로 정비된 성 비오 5세의 통일 미사경본이 1570년에 출간되었다. 이 미사경본으로써 로마 라틴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전례쇄신에 의한 미사경본이 출간될 때(1969년)까지 400년간 통일적이며 고정된 미사성제를 거행해 왔다. 16세기 말엽에 동양에 천주교가 전래될 때 이 고정화된 통일 미사경본을 사용해야만 했고, 따라서 18세기 말엽 중국을 통해 한국에 전래된 천주교회도 이 미사경본에 따라 미사성제를 거행했다. 당시에는 토착화(土着化)의 가능성이 주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전례용어로서 라틴어를 고수함으로써 신자들이 미사성제의 내용을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한국 천주교회는 1935년 덕원(德源)에서 미사경본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대본으로 사용되게 됨으로써 신자들의 미사 참여에 큰 도움을 주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뒤 전례쇄신의 일환으로 개정된 바오로 6세의 미사경본에는 성찬기도 3개가 새로 첨가되었을 뿐 아니라, 모국어 사용을 허용함으로써 모든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복음과 구원진리를 선교적 선포의 강조로 성서봉독의 폭을 대폭 늘려 3년 주기로 봉독하게 하였고, 신자들의 적극적 참여를 위하여 미사 중의 역할을 분담케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 승천을 기념하며 그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성찬의 잔치를 베푸는 미사성제는 가톨릭 신자들의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중심이며 원동력이다. 미사성제로써 하느님 아버지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힘으로 최대의 찬미와 영광을 드리며,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그리스도 신자들에게는 제사와 잔치의 성격을 조화시켜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토착화의 과제가 부과되어 있다. (최윤환(崔允煥))

 

미사 통상문

한자 : ∼通常文 / 라틴어 : Ordo Missae / 영어 : Ordinary of the Mass

교회 전례력에 따라 미사 때마다 그 내용이 변하는 미사 고유문과 구별되어 어느 미사에나 같은 내용으로 부르거나 낭송하는 부분을 말한다. 즉 기리에(자비를 구하는 기도), 글로리아(대영광송), 신경(사도신경), 상투스(거룩하시다), 미사 전문(성찬기도), 주의 기도, 아뉴스 데이(천주의 어린양), 영성체 부분, 영성체 후 폐회식 등이다.
미사 전문은 미사 통상문과 구별되어 불리기도 하는데, 입당노래 같은 미사의 고유 전례문의 작곡에 대하여 기리에.글로리아.그레도.상투스.베네딕투스.아뉴스 데이 같은 미사 통상 전례문의 작곡이 미사곡으로 지칭되고 있다. 14세기 이후 다성 음악으로 작곡되어 17세기까지는 미사 통상문의 모든 내용이 다성 음악으로 작곡되었다.
1969년 미사 통상문, 특히 사제 편에서 외던 부분에 약간의 수정이 가해져 미사 순서가 좀 더 합리적으로 조정되었고, 각 기도문들도 간략하고 다양성 있게 개정되었다.

 

미사예물

한자 : ∼禮物 / 라틴어 : Stipendium Missae / 영어 : Mass stipend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에게 드리는 예물. 이 예물을 드리는 신자는 사제에게 특별한 지향을 가지고 미사를 봉헌해 달라고 청하고, 사제는 그 지향에 따라 미사를 봉헌한다.
초대교회에서는 주교가 모든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참례한 가운데 미사를 드렸고, 평신도가 가져온 빵과 포도주를 미사의 제물로 사용했으며, 제물로 쓰고 남은 것은 성직자와 가난한 이웃의 생활비로 이용하였다. 그 후 빵과 포도주는 다른 예물로 대치되었다. 2세기에 이르러 미사는 평신도들의 가정에서 신자 몇 사람이 참례한 가운데 봉헌되기도 하였고, 신자들의 예물은 미사의 제물과 성직자의 생활비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나 신자 개인의 특수지향으로 미사가 봉헌되지는 않았으며, 그런 지향으로 봉헌해 달라는 요청도 없었다. 미사예물에 이 요청까지 곁들여 이를 사제에게 드린 것은 4세기 이후의 일이며, 이 관습은 11세기에 널리 성행했다. 그러므로 미사예물의 성격은 초대교회에서의 신자들이 제물로 바치던 빵과 포도주에 상당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는 제물의 성격을 지닐 뿐 아니라 교회 운영에 기여하며, 성직자의 생활과 사목활동을 경제적으로 돕는 의미를 가진다(교회법 946조).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고 살며 제단을 맡아 보는 사람들은 제단제물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모르십니까?”(1코린 9:13).
오늘날 미사예물은 금전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으며, 일정 금액을 미사봉헌 때마다 직접 미사예물로 지급할 수도 있고 기금을 세워 그 이자로 수차에 걸친 미사봉헌의 예물에 충당하게 할 수도 있다.

교회법(945-959조)은 미사예물을 받지 않았을지라도 미사봉헌을 원하는 신자들, 특히 가난한 신자들의 지향에 따라 미사를 드려 줄 것을 사제들에게 권하는 등 미사예물에 관하여 자세히 규정하는 한편, 지역 주교회의에서 지역 사정에 알맞게 규정하여 시행하도록 하고, 그 규정이 없으면 교구의 관습에 따르게 하였다(교회법 952조).
한국 교회는 일찍이 미사예물에 관한 규정을 두어 일반적인 원칙을 세웠으나(한국 가톨릭 지도서), 미사예물의 액수.지급방법.용도.미사봉헌의 시기 등 구체적인 시행 관습은 시대마다 또 교구마다 다르다. 대체로 장엄미사의 예물은 평미사의 그것보다 많으며, 신자들의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미사예물의 액수가 다양하다.

 

미사 전문

한자 : ∼典文 / 라틴어 : Canon Missae / 영어 : Canon of the Mass

로마 전례의 미사에 있어 성찬기도. 오늘의 성찬기도 제1양식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기도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모든 성찬의 전례에서 발견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만찬을 재현.반복하는 것으로 예수께서 성체성사를 설정하시면서 하신 “이는 내 몸이요, 이는 내 피다.”라는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
로마 미사전문은 그리스의 것을 기초로 한 것이 틀림없으나 그대로 변형한 것 같지는 않다. 4세기에 성 암브로시오가 자신의 ≪De Sacramentis≫에서 인용한 형태와 비슷한 형태의 전문이 있었다. 교황 성 그레고리오(St. Gregorius) 1세(재위 : 590-604)는 이를 수입하였고, 그의 시대에 사실상 현재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몇몇 초기의 것들이 젤라시오 전례서와 봅비오 미사기도문집(Bobbio Missale), 7세기의 프란코룸 미사기도문집(Missale Francorum)에서 발견된다.
적어도 6세기부터는 ‘미사 전문’이라고 알려진 한 가지 성찬기도만이 서방교회에서 사용되었다.

전문은 감사송과 상투스 뒤에 놓이는데, 원래 상투스는 전문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다. 전문은 보통 ‘Te Igitur’로 시작되어 짧은 기도들로 계속된다. 소위 ‘Memento’, ‘Cammunicantes’, ‘Hanc Igitur’, ‘Quam oblationem’, ‘Qui Pridie’, ‘Undeet Memores’ 등이다.
800년경부터 1967년까지 전문은 침묵 가운데 속으로 외워졌고 ‘Nobis Quoque Peccatoribus’와 맺는말인 ‘Per omnia saecula saeculorum’만이 크게 소리 내어 기도하였다.
1967년, 전문을 소리 내어 외는 것과 모국어로 외는 것이 인가되었다. 1968년에는 성찬의 전례신비를 다양하고 풍부하게 표현하기 위해 예부성성(the Congregation of Sacred Rites)은 서로 다른 세 가지 형태의 성찬기도를 제공하였다. 이후 미사 집전사제는 전문(제1양식) 이외에 제2양식, 제3양식, 제4양식 성찬기도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바칠 수 있게 되었다. (⇒) 성찬의 전례

 

성찬의 전례

한자 : 聖餐∼典禮 / 라틴어 : liturgia Eucharistica / 영어 : Eucharistic liturgy

미사 성체의 가장 장엄한 부분이며, 미사의 순서로는 ‘봉헌송’에서 ‘영성체 후 기도’까지의 내용. 옛말로 ‘제헌미사’라고 불린 것이다.
이는 최후만찬 때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과 취하신 행동에 따라 대체로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즉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될 빵과 포도주를 준비하는 제물 준비,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에 대하여 성부께 감사하고 빵과 포도주를 성체와 성혈로 변화시키며 이를 봉헌하는 성찬 기도 그리고 하나의 빵을 나눔으로써 신자들의 일치가 상징되고, 영성체로써 성목요일사도들이 받아 모셨던 그리스도를 또한 받아 모시는 성찬식이 그것이다. (⇒) 성찬기도, 성찬식

성찬기도

한자 : 聖餐祈禱 / 라틴어 : preces Eucharisticae / 영어 : Eucharistic prayers

성찬의 전례에 핵심이 되는 것으로 감사송부터 끝영광송(final doxology)까지의 부분. 그 주요 내용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을 회상하고 당신의 살과 피를 주신 데 대하여 감사하며(감사송), 구속으로 인하여 온 누리에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 우리의 왕이요 대제관이신 그리스도를 찬양하고(거룩하시다), 거룩한 변화를 위하여 성령께 청원하며(Epiclesis) 면병과 포도주를 축성하여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시키고(거룩한 변화), 그리스도의 구원 성업을 기념하며(Anamnesis) 제물이 되신 성체와 성혈을 성부께 봉헌하고(봉헌),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하여 성인들의 전구(轉求)를 구하며(전구), 성삼위께 영광을 드리는 기도(끝영광송) 등이다.
오늘날 성찬기도는 네 종류를 두어 선택해서 사용하도록 했는데, 거룩한 변화의 말씀만은 통일되어 있다. 그 선택 기준에 따르면 제1 성찬기도는 언제나 사용할 수 있으나 특히 주일과 그 성찬기도에 이름이 나오는 사도들과 성인들의 축일에 사용하고, 제2 성찬기도는 주간 평일과 특수한 경우(어린이 미사)에 사용하며, 제3 성찬기도는 특히 주일과 축일에 그에 맞는 감사송과 함께 사용하고, 제4 성찬기도는 감사송이 불변이므로 고유 감사송이 없는 날 사용할 수 있다. (⇒) 로마 미사 전문

성찬식

한자 : 聖餐式 / 라틴어 : ritus Communionis / 영어 : Communion rite

성찬의 전례에 있어서 성부께 제물로서 제헌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빵과 술의 형상으로 나누어 먹고 마시는 의식. 미사성제의 순서로는 ‘주의 기도’에서 ‘영성체 후 기도’까지의 부분이며, 옛 말로 제찬봉령(祭粲奉領)이라 불린 것이다. 하느님께 바쳐진 제물은 하느님 한 분에게만 속하는 것이고 그
제물이 올려진 제단 역시 하느님의 것이지만, 성찬식은 제사를 받으신 하느님이 인간을 당신의 잔칫상에 초대하시는 것이다. 이 의식에는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라는 의미와 인간의 성화(聖化)도 하느님의 거룩하심에서 얻는 것이고, 내세에서 인간이 누릴 영화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더욱이 하느님의 잔칫상에 참여함으로써 하느님과 일치를 이룰 수 있고, 같은 잔치에 참여하는 형제들과의 일치 또한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류가 바친 제물은 다시 인류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이 된다는 것이고, 이 선물은 바로 인류의 구원이고 하느님과의 일치이며 같은 하느님을 예배하는 백성들의 일치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성체와 성혈로 인한 당신과 그리스도교인 상호의 내재성(內在性)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요한 6,56-57).

영성체

한자 : 領聖體 / 라틴어 : communio / 영어 : holy communion / 독일어 : Kommunion

미사 중 성찬식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것을 말한다. 신자들은 영성체를 통하여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게 되고, 신자 상호 간에도 일치를 이루게 된다.
영성체의 방법으로는 ① 성체(聖體)만 영(領)하는 것, ② 성체를 성혈(聖血)로 축성된 포도주에 적셔서 영하는 것, ③ 성체를 영하고 성혈로 축성된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시는 것, ④ 성혈만 영하는 것 등의 4가지 방법이 있다.
로마 전례에 있어서 사제는 성체와 성혈을 모두 영하고(양형영성체), 신자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체만 영한다. 그러나 어느 한 가지 형상으로 영성체를 하든지 온전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신다는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의 원칙대로 성체만 영해도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것이다. 신자들은 영성체에 앞서 성체를 흠숭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영혼과 육신의 준비를 하게 된다. 우선 성체를 영하기 위해선 성세성사를 받은 자로서 은총의 상태에 있어야 하므로 만약 대죄(大罪)를 지었다면 고해성사(告解聖事)를 받아 은총의 지위를 회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성체를 모독하는 죄를 범하게 된다(1코린 11,27-29). 또한 육신의 준비로, 한 시간 전부터 약과 물을 제외한 음식물을 먹지 않는 공심재(空心齋)를 지켜야 한다.
신자들은 성체를 영함으로써 영혼의 성장을 가져오고, 그리스도와의 일치 및 신자들 간의 일치를 이루어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열망이 생겨나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고 헌신케 된다.
모든 신자는 이성(理性)이 갖추어진 자라면 교회의 규정에 따라 적어도 1년에 한 번 부활절에 영성체를 해야 한다(새 교회법 920조). 새 교회법 제917조에 의하면 이미 영성체한 자가 같은 날 다시 영성체하려면 자신이 참여하는 미사 중에서만 가능하다.
교회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위하여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주일마다 혹은 매일 영성체할 것을 권장한다. (⇒) 성체성사

전례

한자 : 典禮 / 라틴어 : liturgia / 영어 : liturgy

전례는 교회의 의식(儀式)이다. 교회가 성서나 성전(聖傳)에 의거하여 정식으로 공인한 의식으로 개인의 신앙생활과는 구별된다.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의 교회 안에서 그 전례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미사(Missa)이며, 그 밖에 성사 및 준성사, 성무일도, 성스런 행렬, 성체강복식 등이 전례 속에 포함된다. 이 말의 원어(原語)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10,11에 나오는 그리스어의 ‘liturgia’이며, ‘민중(laos)에 대한 봉사(ergon)’를 의미하였다. 또 가난한 사람에 대한 교회의 구빈사업(救貧事業)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였다(2코린 9,12). 그런데 민중에 대한 봉사나 구빈사업은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에서 집단적으로 행해졌기 때문에 뒷날에는 교회의 의식이 전례라는 말로 굳어지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전례를 통해서 우리 속죄의 구원사업이 수행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와 참된 교회의 본질을 다른 이에게 드러내 보이고 명시하는 데 가장 큰 도움”(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이 되는 것이 전례라고 말한다.
전례는 하느님과 구원되어야 할 인간들과의 결합이며, 끊임없는 만남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 곧 교회는 전례를 통해 하느님을 세계의 창조주로, 또한 주재자(主宰者)로 공경하고, 그에게 감사하며, 속죄를 드리며 기원한다.

전례의 주체는 교회다. 교회 안에는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완수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현존(現存)한다. 미사에도, 성체 형상에도, 사제의 인격 속에도, 말씀 속에도 존재할 뿐 아니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나의 이름을 위하여 모인 곳에는 나는 그 가운데 있다”(마태 18,20)는 복음과 같이 교회에는 하느님이 현존한다. 비록 전례가 성직자에 의해 거행되더라도, 그것은 그 속에 현존하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행동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전례는 교회의 위임에 따라 지정된 성직자가 거행하는 의식적 행위 전체라고도 정의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교회의 사제직이 지진 독특한 성격을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 사제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뿐이다. 그는 대사제이며, 다른 모든 사제는 그의 기관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제가 수행하는 모든 전례에 있어서 그 권능(權能)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은 사항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아 거룩하게 된 사제는 독특한 위치를 지닌다.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들의 대변자다.
그리스도교의 전례는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다른 종교의 의식과는 달리 본질적으로 민중이 참여하고, 같이 기도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그래서 성당의 설계도 다른 종교의 사원(寺院)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보통 사원은 신상(神像)을 안치하는 하나의 작은 방인데 비하여, 성당(ecclesia)은 신자들의 집회소(集會所)이다. 때문에 사원이 외양(外樣)을 위주로 한 건축인데 비해, 내부를 위주로 한 건물이 성당이다. 여기서 전례가 바로 신자 공동체를 위한 의식이고, 공동체를 위한 기도라는 점이 나타난다. 신자는 이 공동체에의 참여를 통하여 비로소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주일미사와 부활절 및 지켜야 할 축일에는 반드시 전례에 참여해야 한다.
전례는 외적인 형식을 존중하고, 기도와 성가도 큰소리로 불러야 하며, 일정한 장소와 때를 지킨다. 왜냐하면 모든 공동체적인 행동은 사람들이 모일 공간적.시간적으로 확정된 중심과 감각적으로 지각될 수 있는 대상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교회력

한자 : 敎會曆 / 라틴어 : annus ecclesiasticus / 영어 : ecclesiastical calender

전례력(典禮曆, annus liturgicus) 혹은 성력(聖曆, annus sacer)이라고도 하며, 성주간과 성인들의 축일을 날짜순으로 배열하여 작성한 교회의 연력(年曆)이다.
교회력의 구성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에 따라 매년 1월 1일에 시작되어 12월 31일로 끝나는 일반 연력과 달리 교회력은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 첫 주의 일요일에 시작되고, 성탄절.부활절을 거쳐 성령강림 마지막 주의 토요일로 끝난다.
교회력의 기준은 교회력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부활절로, 이에 따라 대림 첫 주의 일요일도 일정하지 않고, 대개 사도 성 안드레아의 축일인 11월 30일경이 된다.

초대 교회에서의 교회력은 지방적인 특색이 강하여 교구마다 고유한 교회력에 따라 전례를 집행했는데, 이러한 현상은 1568년 교황 비오 5세에 의해 교회력이 정비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비오 5세는 여러 지역마다 서로 다른 성인의 축일을 정비하고 그 가운데 87명의 성인만을 교회가 기념해야 할 성인으로 지정했다. 그 뒤 계속하여 새로운 성인이 탄생하면서 교회력은 다시 복잡해졌고, 최종적으로 정비된 것은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 때의 일이다. 교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102-111항)을 통하여 확인한 바의 원칙에 따라 교회력을 재편하였다.

전례 양식

한자 : 典禮樣式 / 라틴어 : formulae liturgicae

규정에 따라 전례를 집행하는 형식과 절차를 가리키는 말로, 예컨대 미사나 세례식 등 성사와 준성사를 집행하는 방법을 지칭한다. 이러한 전례 양식의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바 있지만, 이것이 전승되는 가운데 지방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하였다. 대표적인 전례 양식으로는 가톨릭 전례 양식과 동방정교회 전례 양식이 있다. 가톨릭 내의 전례 양식으로는 로마 전례 양식.안티오키아 전례 양식.알렉산드리아 전례 양식.갈리아 전례 양식 등이 있고, 동방정교회의 전례 양식은 16가지가 있다. 또한 수도원에 따라 서로 독자적인 전례 양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가톨릭교회는 고유한 전례 양식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교회법으로 이를 정하고 있으며, 교황청의 허가 없이 전례 양식은 변경될 수 없다. 그러니까 특정한 전례 양식은 교황청의 허가를 받아야 이를 집행할 수 있는 것이다.
교황 식스토 5세 이래 전례 양식에 관한 감독은 예부성성이 맡아 왔으며, 현재 그 업무는 성사 경신성성이 맡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로 돌아온 동방교회의 전례 양식에 대해서는 동방교회성성이 맡고 있다.

전례음악

한자 : 典禮音樂 / 라틴어: musica liturgica

교회음악 가운데 특별히 교회생활에 있어 중요한 행위의 전례, 즉 미사나 기타 성사(聖事)를 집행할 때 전례문(典禮文)에 결부된 노래로서 하느님을 찬양하고 신자들의 성화(聖化)를 목적으로 하는 음악.
성음악은 전례의식의 관계가 있건 없건, 연주거나 듣거나 노래함으로써 인간의 마음을 성화시켜 주며, 인간 내부의 깊숙한 곳에서 진리를 찾게 하여 기도에로의 마음자세를 갖추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면 어떤 형태의 것이건 ‘성음악’이란 용어를 쓸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음악가, 작곡가는 이에 대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종교음악이란 전례의식과의 직접적인 관계없이 종교적 감정의 표현에 해당하는 모든 음악을 말한다. 오라토리오.칸타타.영가(靈歌).고전성가(motet).수난곡.기타 종교적 영감을 받은 악기음악 혹은 오케스트라 작품 등을 일컫는다.
전례음악이란 교회가 법적으로 공적으로 전례 의식 안에 사용하도록 허용한 음악, 또는 실제 사용되었던 음악으로서 전례 의식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 하에서, 시대에 따른 전례의식의 변화와 아울러 인간의 표현(언어, 제스처)의 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공동체의 전례 의식에 이바지하는 역할을 하는 음악을 말한다. 기술적.심리적 고려에서 출발되는 것이 아니라 전례 행위와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전례음악의 멜로디는 그 성격상 전례 의식 속의 말씀(텍스트)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으며, ‘노래 불리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즉 전례 속의 말씀을 노래함이 우선적이고, 악기는 그 노래의 반주로서 또는 특수한 전례적 분위기 형성을 위해서만 사용된다. 한마디로 ‘전례 텍스트에 멜로디의 옷을 입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례음악은 그 성격상 순수한 음악의 가치에서만 머무를 수는 없고, 텍스트의 본질적 요구에 응하는 방법으로서만 그 가치를 갖게 된다.

전례서

한자 : 典禮書 / 라틴어 : libri liturgici / 영어 : liturgical books

전례를 위해 교황이 공인한 책. 미사경본(Missale Romanum).성무일도서(breviarium Romanum).로마 예식서(rituale Romanum).주례용 예식서(Pontificale Romanum).순교성인록(martyrologium Romanum).약식서(memoriale rituum).성가집(liber antiphonalis).성사관계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초기 교회시대에는 미사 집전자에 따라 사용하는 전례서가 달랐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전례서가 범람하고 있었다. 때문에 건전한 전통을 보전하기 위한 지침서로서 공인된 전례서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많은 전례학자들이 연구를 거듭한 끝에 내놓은 것이 공인된 전례서이다. 그 뒤 전례서는 각 지역의 전례에 지침이 되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시대에 부응한 전례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전례를 위한 전례서를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또 교회가 올바른 진보의 길을 걷기 위해 ‘전례서는 신학적 사목적 역사적으로 신중하게 연구된 이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개정되어야 한다.’고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은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공의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1967년부터 이전에 사용하던 라틴어 전례서 대신 한국어로 된 전례서를 사용하게 되었다.

감실

한자 : 龕室 / 라틴어 : tabernaculum / 영어 : tabernacle / 독일어 : Tabernakel

성당 안에 성체를 모셔 둔 곳이다. 감실 안에는 성체를 담은 성합(聖盒)이 있으며, 그 밑에는 성체포가 깔려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 성체는 그 안전을 위해 집 안에 모셨으나 4, 5세기경부터 성체를 성당에 모셔 두는 관습이 생겨 8세기에는 제단에 모시게 되었다.
1215년 제4차 라테란(Lateran) 공의회에서 이를 확정시키고 1918년 교회법으로 의무화되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는 감실을 견고한 금속으로 정교하게 만들어 안전하게 잠글 수 있도록 했으며, 적절하게 장식하여 성체의 위엄을 나타나게 하였다.
또한 미사 후에 감실에 성체를 모셔 두는 첫째 주목적은 노자영성체를 시켜 주는 데에 있고, 2차적 목적은 미사 외에도 영성체를 시켜 주며 그리고 형상 속에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흠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크게 만들고 또 성체를 많이 모실 필요 없이 제대 중앙이나 제대 옆 등 성당의 적절한 장소에 위치하게 했으며, 성당 안에 단 하나의 감실만을 두게 하였다.
감실 앞에는 성체를 모셔 둔 것을 아리고 성체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작은 램프(성체불)를 켜 두도록 하였다. 신자들은 감실 앞에 지나갈 때 깊은 절을 함으로써 존경을 표시한다.

제단

한자 : 祭壇 / 라틴어 : altare / 영어 : altar

이 말은 ‘제사(祭事)의 장소’라는 뜻의 히브리어에서 유래. 가톨릭교회에서 미사성제가 봉헌되는 단(壇)을 말한다. 순교자의 유해(遺骸)가 그 안에 안치되기도 하는데, 이는 초기 교회나 카타콤바(Catacombae), 즉 지하묘지에서 순교자의 무덤 위에 돌로 세운 벽감(壁嵌)에서 의식을 행하던 것에서 유래하였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전례상의 개혁으로, 교황청은 미사 드리는 성당의 정리와 장식에 대한 로마 미사경본의 총지침(Institutio generalis missalis Romani, 1969, No.260∼270)을 발표했는데, 이에 의하면 제단은 고정(固定)제단일 수도 있고, 이동(移動)제단일 수도 있다. 거룩한 장소가 아니면 예외적으로 보통 상 위에 흰 보와 성체포를 깔고 미사를 드릴 수 있다.
공의회 이전에는 신자를 등진 상태로 미사의식을 행했으나 지금은 사제가 주 제단(主祭壇)의 주위를 자유로이 걸어 다니고 신자를 마주 볼 수 있도록 벽과 충분한 공간을 유지할 것을 권장한다.
보통 주 제단은 견고하고 품위가 있어야 하며 고정되고 축성된 것이어야 한다. 또한 제단에 성인의 유해를 두는 관습이 권장되고 있는데, 먼저 유해의 확실성이 검증되어야 한다.

성수

한자 : 聖水 / 라틴어 : aqua benedicta / 영어 : holy water

특별히 종교적인 용도를 위해 사제(司祭)가 교회의 이름으로 축성(祝聖)한 물. 물은 종교적 정화(淨化)의 상징으로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힌두교, 이집트의 고대 종교 등에서도 제단에 오르기 전에 몸을 씻는데, 부정(不淨)을 쫓을 때 등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리스도교에서의 성수의 사용은 구약시대부터 유래되어(탈출 30,18-21), 2세기에 이미 집을 축성하기 위해 성수를 사용한 기록이 남아 있다. 동방교회에서는 4세기에, 서방교회에서는 5세기에 보편화되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신체적인 위험과 유혹의 순간에 악령(惡靈)의 힘을 물리치고 하느님의 은총을 얻기 위해 성수를 사용한다. 특별히 성당에 들어가기 전 성당 입구에 놓인 성수반(聖水盤)에 채워진 성수를 손에 찍어 성호를 긋는다. 옛날에는 주일미사 전에, 사제가 큰 성수채로 신자들에게 성수를 뿌리는 성수예절을 거행했었다. 성수는 사제의 축성과 축복.헌당식.구마식.장례 예절 등에 사용되며, 교회는 신자들이 각 가정에서도 성수를 사용할 것을 장려한다.
성수는 그 용도에 따라 보통의 성수(구약시대에 예언자 엘리세오가 하듯이, 방부제로 약간의 소금이 섞여진다)와 성세성사(聖洗聖事)에 쓰이는 성세수, 부활절에 특별한 예식으로 축성되는 부활절 성수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성수예절

한자 : 聖水禮節 / 라틴어 : aspersio / 영어 : aspesion

성수를 뿌리는 예절. 성세성사를 집전할 때 예외적인 상황에서 세례 지원자의 이마에 정화수를 뿌려 세례를 주던 살수례(撒水禮)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준성사의 하나로 축성이나 강복을 하는 예절 속에 포함되어 거행된다.